요즘 평양냉면 리뷰가 꽤나 잦아졌다. 냉면은 차가운 음식이다보니 여름이 제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달리 나는 추울 때 차가운 음식, 더울 때 뜨거운 음식을 먹는 청개구리라 그런가 코끝이 싸늘해질 즈음 냉면 생각이 더 나는구만. 평양냉면은 마이너한 추종자들만큼이나 진입 장벽이 꽤 높은 편이고 각자 선호하는 맛에 따라 최애 맛집도 달라지는 것 같다. 보통 서울 평양냉면 유명 맛집으로 검색하면 우래옥, 진미평양냉면, 을밀대, 정인면옥, 필동면옥, 능라도 등등이 나오는데 세월의 흐름이 절로 느껴지는 외관들 사이로 유독 범상치 않아보이는 곳이 한 곳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서북면옥이다. 보통 냉면 맛집은 종로 쪽에 많은 것 같은데 구의동에 홀로 떨어져있는 맛집이라니. 평소 같았으면 서울 횡단이 엄두가 나지 않아 금새 포기했겠지만 이날 마침 어린이공원 쪽에 볼일이 있었다죠? 하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다행히 어중간한 시간대에 방문해서 웨이팅은 피할 수 있었다. 가게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옛 간판을 보며 '와, 여기 제대론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찐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죠. 음식점과 시간의 흐름을 같이한 낡은 테이블부터 의자, 그리고 마치 이 자리에 붙박이로 계셨던 것처럼 익숙하게 식사하고 계신 어르신들까지. 어떤 공간들은 시간에 묻혀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손잡고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곳이 그런 곳이었다. 괜히 실실 나오는 웃음을 뒤로 하고 빠르게 주문 완료.
물냉면 (10,000원)
소고기 수육 (10,000원)
접시만두 (10,000원)
플레이팅도 꽤나 투박한 편이라 능라도의 놋그릇, 우래옥의 자기 그릇과 다르게 냉면도 '스뎅' 냉면기에 담겨 나온다. 근데 이런 투박함은 오히려 정겨움을 불러일으켜서 환영이지요. 동치미 국물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이라 긴가민가하면서 먹어보았는데 정말 깔끔하다 느껴지는 국물이었다. 서북면옥의 평양냉면은 유독 슴슴하다는 평이 많은데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슴슴함이 지루함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이게 진짜 내공인 듯. 메밀면은 찰기가 많은 편은 아니며 적당히 끊어지는 느낌이라 국물과 어우러지는 정도도 좋았다. 자칫 국물이 너무 간이 안되어 있으면 면을 먹는 와중에도 '이게 대체 무슨 맛인가' 싶을 수 있는데 은은한 메밀향이 이를 보완해주어 끊임 없이 들어가는 맛을 만들어냈다. 수육은 혀에 착 감기는 두께로 썰어주셨는데 삶아낸 국물을 위에 뿌려주셔서 촉촉하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부들부들하고 야들야들해서 생마늘과 같이 먹으면 캬. 평양냉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만두 역시 대체로 슴슴한 편. 어떤 곳은 육즙을 가둘 정도로 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곳도 있던데 서북면옥의 만두는 부추 등 야채가 중심을 잡고 있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먼저 치고 올라온다. 스뎅 냉면기만큼이나 손 모양이 그대로 느껴지는 만두의 외양도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는 일단 추천.
'평양냉면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밍밍하고 뭐 빤 맛이 난다' 이런 분들은 가서 드셔도 머릿 속에 물음표만 갖고 돌아오실 것 같아 비추 드립니다. 여기는 평양냉면 애호가들 중에서도 '나는 정말 슴슴한 간이 좋다'하시는 분들이 가면 좋아하실 듯.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저고요. 요즘 평양냉면이 유행처럼 번지고 값이 비싸지면서 그냥 외양만 좋고 그럴듯한 냉면들도 나오던데 서북면옥에서는 오래된 세월만큼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방문이었다. 참, 냉면에 소주 드셔보신 적 있나요? 저도 몰랐는데, 여기 국물에 소주 한잔하면 그게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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