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말 안 섞음_능라도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거든요

평양냉면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양극단을 향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거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며 냅다 폄훼하기 일쑤다. 참고로 나는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평냉 반대파의 의견을 철저히 묵살(?)한다. 바퀴벌레를 싫어한다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태풍이 싫다고 이 세상에서 소멸되나요? 이미 있는 걸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부정하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실존을 부정하는 느낌인데요! 여튼 오늘 소개할 능라도는 나의 평양냉면 입문에 큰 도움을 준 곳으로서, 아무래도 첫 입덕의 계기가 된 곳인 만큼 내로라하는 유명 평양냉면 가게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례로 이전 회사 중 한 곳이 마포에 위치해 바로 앞에 능라도가 있었는데, 여름엔 거의 집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해서 사람들이 평양냉면 좀 그만 먹으라고 할 정도였다; 능라도 문짝 한 개쯤은 내 돈으로 달지 않았을까?

이게 전부

다 다른 날

찍은 것

 

냉면 말고 다른 것도 맛있거든요

최근에는 의왕 롯데 타임빌라스에도 능라도가 생겨서 한번 다녀와봤다. 이 지점은 백운호수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는데, 아무래도 가족단위 고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그런가 연령대가 꽤 높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하시더라. 사실 포스팅에 들어간 사진을 찍던 날 전에도 한번 방문해서 평양냉면부터 수육, 제육 등 옹골차게 즐긴 적이 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주문을 마쳤다. 

 

오늘의 주문
평양냉면 (15,000원)
평양냉면 비빔 (15,000원)
제육 반접시 (17,000원)

잘 있었니ㅠ

차가운 제육이 맛도리일줄이야

솔직히 가격대로 쉴드 칠 수 없는 건 인정하는 바이다. 두 명이서 각 냉면 1개씩, 사이드 메뉴(?) 1개 주문했을 뿐인데 거진 5만 원 돈이라니. 하지만 평양냉면을 마주하는 내 마음이 너무 행복하잖아요? 주로 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서 점수가 갈리는 주요 요소들은 1) 육수의 진하기와 2) 면의 메밀 함량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능라도는 육수가 많이 진한 편은 아니다. 한 숟갈 떠먹었을 때 진한 육향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보다는, 깔끔하고 은근하게 나는 편이다. 마포역에 있는 지점은 방문하는 시간대에 따라 육수의 진하기와 염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었는데 의왕점은 그게 좀 덜한 듯. 면의 메밀 함량을 판별하는 방법은 면의 찰기를 확인하면 되는데, 메밀 함량이 높을수록 찰기가 없고 국수가 뚝뚝 끊긴다. 능라도의 면은 중간 정도로, 면의 표면이 다소 매끈하고 입에 넣었을 때 메밀 향이 조심스럽게 나는 편이다. 종합적으로 봤을 땐 개성이 강한 편은 아니나 평양냉면의 아이덴티티는 명확하게 지킨다는 느낌이 든다. 내 주변 사람들은 국물 한 입 맛보고 다들 '이게 무슨 맛이냐'했지만 꿋꿋이 먹는 나란 덕후. 제육은 비계와 껍데기가 붙어 있는 삼겹살이 잘려 차가운 상태로 나오는데, 솔직히 처음엔 고기를 차갑게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한번 먹고 난 후엔 이것만 먹게 된다. 특히, 제육을 주문하면 같이 주는 쌈장이 있는데 이게 어느 정도 양념이 된 쌈장이라 제육 한 점에 쌈장 조금, 생마늘 하나 올려 먹으면 기가 막혀요. 개인적으로 여름에 먹는다면 냉면과 제육의 조합을 두 손 들어 추천한다.

 

갈까요, 말까요?
평양냉면 좋아한다면 무조건.

평양냉면 값이 미친듯이 오름에 따라 이젠 호기심으로 평양냉면을 먹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평양냉면 없인 여름을 못 버티는 덕후들만이 그 자리에 남아 열심히 소비 중인 듯. 앞서 이야기했듯이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본인의 취향에 따라 어디가 최고다, 여기가 진또배기다 갈리지만 능라도는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 한번 가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무난한 곳에서 평양냉면을 처음 입문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일종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평냉 사랑해.

 

위치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