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다시 돌아온 목포 추억팔이 포스팅 되시겠습니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을 속담처럼 듣긴 했지만 실제 목포를 방문해보는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별다른 계획 없이 현실 도피처(?)로 도망오듯이 온 여행이라 그냥 '많이 먹고 많이 걷자'를 모토로 부지런히 쏘다녔는데, 목포로 내려오는 ktx 안에서 '이건 꼭 먹고 가야겠다'고 결심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민어! 민어는 예전에 임금님 수랏상에 올라갈 정도로 고급 생선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는데 수도권에 사는 사람으로서 민어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그리 많지 않아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터였다. '목포는 항구'니까 이왕 내려온 김에 제대로 된 민어 요리를 먹고 가야지 단단히 결심을 했고, 우리에게 민어를 제대로 맛보여줄 곳이 대체 어딜지 한참을 수소문하다 발견한 이곳. 영란 횟집. 사장님, 여기 민어전 하나 담백하게 구워주세요!
욕심 같았으면 명품 쇼핑하는 중국 재벌들처럼 메뉴판을 보며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라고 이야기했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고... 그 전에 이미 다른 식당들을 거쳐온터라 헤비하게 먹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마음껏 주문했다가 못 먹고 그 소중한 민어를 남길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민어 가격대가 생각보다 손 떨리는 모양새라 위장과도, 현실과도 타협하기로 했다. 우리가 제일 먹고 싶었던 민어전과 그와 환상의 조합을 이뤄줄 뜨끈한 매운탕 하나 기깔나게 말아주세요.
민어전 (45,000원)
매운탕 (5,000원)
생각보다 음식들은 빠르게 세팅 되었다. 서빙하는 과정에서 낡은 냄비에 담긴 매운탕을 그릇에 양껏 담아주셨는데, 왠지 집에서 국 덜어먹는 느낌이라 뭔가 정겹고 귀엽잖아. 민어 일부와 쑥갓, 파 등 야채가 들어가 있는 전형적인 매운탕이었고 요즘 음식들처럼 맵도록 작정하고 만든 음식이라기 보다 민어에서 나오는 기름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리한 의도가 분명해보이는 맛이었다. 다만 민어 자체가 가시가 많은 편이라 살점을 골라먹기가 힘들었다는 것이 단점. 몇 분 있다가 나온 민어전은... 일단 때깔이 너무 예뻤다. 마치 봄날의 개나리처럼 어여쁜 노란색을 띠고 있는 민어전은 보기만 해도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워보였다. 처음에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껴보려고 아무런 양념 없이 민어전만 한입 베어물어보았는데 엄청 담백하고 적당히 기름져서 고소한 맛이 일품! 민어전을 먹어본 사람들이 '민어전은 동태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원래 동태전을 그렇게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라 그런지 이제까지 먹었던 동태전이 별로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 입맛엔 훨씬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 하나 없는 맛이었다. 마치 생선계의 감자라고 해야하나. 자칫 민어전만 먹어서 심심하다면 우리에겐 전라도 묵은지가 있다. 보기만 해도 '와, 이거 제대로다'하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전라도 묵은지를 민어전 위에 올려 한입을 먹으면 묵은지 특유의 콤콤하지만 묵직한 시원함과 함께 민어의 기름기와 담백함이 조화를 이뤄 소주를 절로 부르네.. 목포는 항구인지 항구는 목포인지 모르게 한병 뚝딱이요.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민어전은 드세요
영란횟집은 목포민어골목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골목 안에서도 맛집으로 소문이 난건지 웨이팅도 꽤 있고 역사도 꽤 오래되어 보였다. 뭔가 '영란횟집을 꼭 가야한다!'라고 추천하기엔 민어를 취급하는 다른 음식점들을 가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함정. 하지만 영란횟집이 아니더라도 민어 요리를 하는 음식점은 한번 방문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래도 수도권에서 민어 먹기가 더 힘들고, 더 비싸기도 하고 그 지역에서 유명한 재료로 식사하는 것도 여행의 크나큰 재미니까요. 그나저나 추억팔이는 괜히 시작한건지 목포 포스팅 쓰면서 내 마음이 더 괴롭고 힘드네. 원래 먹어본 맛이 더 무섭다고 민어전 다시 먹고 싶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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