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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2023년이 공존하는 곳_전태일기념관

예술과 배움

by zipzip 2023. 9. 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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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별잡을 보고 난 후 알게 된 '서울을 여행하는 새로운 방법'

알쓸별잡이라는 프로그램 좋아하시나요? 최근 7회를 마지막으로 아쉽게 종영했는데, 여러모로 나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준 프로그램이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만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인문학과 과학, 천문학, 영화가 고루 섞인 재밌는 정보들을 탐닉하다 보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내 도시를 여행하며 자신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게 정말 멋져 보였다. 평생 동안 지나다니면서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도시의 일면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달까. 그래서인지 최근엔 어디를 가게 되면 그 근처에 있는 박물관이나 기념관, 옛 역사적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데 전태일기념관 역시 그 노력의 일환으로 발견한 곳이었다.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는 학생 때 스치듯이 듣기만 했지 부끄러울 정도로 아는 게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그의 일생 중 일부는 알게 되었네요.

 

종로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숭고한 정신

전태일기념관은 종로와 을지로 사이, 청계천 옆 작은 상가들 사이에 우뚝 서있다. 처음엔 관공서인가 하고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 외벽에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가 있었고, 기념관 외벽을 감싸고 있는 글씨는 이 진정서를 재해석해서 설계 및 시공한 것이라고 했다. 진정서를 찬찬히 읽어보니 지금은 근로자들의 연령대만 조금 높아졌을 뿐, 아직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 참담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외벽에 게시되어 있는 진정문.

전태일기념관은 전시 공간 외에도 재단 사무실이 같이 있어 대중들에게 일부만 개방하고 있는데, 관람 비용은 무료로 1층으로 입장하면 3층부터 관람하라고 안내해 주신다. 3층에는 내부 공간을 관리하는 담당자 한분 외엔 다른 관람객이 없어 조용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고 전태일의 생애를 시작으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어떤 운동 및 노력을 펼쳐왔는지 다양한 사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이해할 때 일기가 주는 효과가 큰 것 같다.
전태일이 매일 지나다녔던 출퇴근길.

전태일의 이타적인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곳곳에 나와 있는데,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것이 여직공들이 배고파 하자 자신의 돈을 털어 국화빵을 사주고 본인은 차비가 없어 몇키로가 되는 퇴근길을 걸어갔다는 것. 그때는 통금이 있을 시대라 집에 걸어가다가 경찰들에게 잡히기 일쑤였는데 그런 일이 하도 반복되자 경찰들도 전태일의 사정을 알고 봐준 경우도 많다고 하다. 

직공들이 근무했던 공장 내부를 재현해놓은 공간.

전시관 일부에는 당시 직공들이 근무했던 공장 내부 환경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는데,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어린 여아들이라곤 하나 허리랑 고개를 피지도 못할 정도로 낮은 높이에 업무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발육도 안될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이 좁은 실내 공간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있고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와 실밥을 그대로 코로 들이마셨을 걸 생각하면 내 숨이 절로 갑갑해진다. 실제로 전태일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이 폐병, 신경통 등을 앓고 있고 안 아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전태일의 각오를 담은 일기 속 문구.
전태일이 창설한 바보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전태일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바보회를 창설하고 현 실태 조사를 위해 설문을 진행했다. 지금보면 누가 봐도 당연한 조건들이겠지만 그때 당시 설문 결과를 보면 거의 태반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고, 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고 보건소의 건강 진단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1개월 수당도 몇천 원 수준. 괄목할만한 사실은 처음에 바보회에서 진행했던 설문조사 응답률은 매우 낮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올라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점차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봐도 혁신적이고 영리한 지점이 있는 사업방침.
증말..깝깝하네요^^...

기념관의 가장 좋았던 점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에 대한 사실적인 영상이나 사진 자료 등으로 그의 노고를 기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분신 이전에 민주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노동자들의 의견을 모았고, 그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애썼는지와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열사가 그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차례로 훑어보다보니 당시 살면서 마주했던 정치적 탄압과 주위의 압박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극심했을 것 같은데 자신의 목숨이나 안위보다 노동자만을 생각하고 평생을 바친 두 분의 정신에 숙연해졌다. 어느 시대건 강자의 탄압은 있고, 약자들은 그에 맞서 대항하느냐 굴복하느냐 항상 싸워야 하는데 언제쯤 그런 세상은 사라질 수 있을까. 언제쯤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전시관 마지막 공간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리고 그의 생애를 재해석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캔버스에 풀어놓은 작가들의 신선한 접근에 눈이 즐거워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기념관 1층에는 초등학생들이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내온 편지들을 전시해두었는데,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기념관을 보기 전 단순히 분신 항거만 알고 있었던 내 무지가 창피해지기도 했다. 전시관 자체는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니지만 시청각 자료와 사료들로 내실 있게 꾸며놓으셔서 꽤 오랜 시간 관람을 한 것 같다. 나 역시 이제야 역사에 관심도 가지고, 기념관도 가보고 하는 초짜 탐구러지만 다른 분들도 종로에 오실 일 있으면 한 번씩 방문해 보시길! 아이들 손잡고 가족 나들이 하기에도 좋은 날씨니, 맛있는 것도 먹고 몰랐던 역사도 배우는 뜻깊은 시간 보내보시길 바란다.

 

위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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