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언제 전시회에 주로 가시나요? 마음이 복잡할 때, 지인이나 연인과 약속이 잡혔는데 딱히 할게 없을 때, 시간이 남을 때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생각이 막혔을 때 전시회에 간다. 영상으로든 글로든 여러 플랫폼으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알 수는 있지만 전시회에 가면 몰입도 높아지고, 보통 한 작가의 여생을 따라 작품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해야하나. 그 모든 분투와 열정을 아로새긴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내 견문도 덩달아 넓혀지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영감과 삶의 이해하는 시선을 획득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고민거리가 하나 있던 차에 체제 전복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온 미스치프의 전시회가 열린다기에 혹여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한번 다녀와봤다.
후기들을 살펴보니 주말에는 사람에 치여 관람이 어렵다길래 평일 오후, 제일 애매한 시간인 2시에 방문해봤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서 체험형 작품 앞에서는 조금 기다려야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주말에는.. 오우, 생각도 하기 싫은 인파 수준이겠군.
전시가 열리는 대림미술관 외벽에는 미스치프가 훔친(?) 브랜드들의 포스터가 빈틈 없이 붙어 있었는데, 실제 미스치프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의 빈틈을 고발하고자 수많은 브랜드의 로고나 제품을 카피하고 이용했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은 소송을 불러일으켰는데(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그 소송으로 인해 미스치프의 브랜드 인지도는 더욱 올라갔다고 하니, 자 이제 누가 위너지?
첫번째는 미스치프에서 만든 8개의 매거진을 전시해놓은 공간. 여러가지 주제를 여러가지 컨셉으로 표현했는데 독립 출판사 잡지처럼 다음 페이지에 도무지 뭐가 나올지 전혀 예측이 안되는 잡지다. 조금 아쉬웠던건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나로서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부족했던 것.
두번째는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직접 느껴볼수 있도록 한 공간. 미스치프가 캠페인을 진행하는 방식은 대체로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것이 많았는데, 브랜드 캠페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리학에 근거한 사회 현상을 뒷받침하는 실험을 하는 그들의 방식이 참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의료비 청구서 아트였다. 미국은 알다시피 병원비, 보험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싸기로 유명한데(의료 민영화는 절대 안되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지불할 능력이 안된다. 미스치프는 이 문제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해결하는데, 바로 현대미술을 활용하는 것. 병원비나 현대 미술이나 비합리적으로 가격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병원비 청구서를 크게 인쇄한 작품을 현대미술로 판매해 그 수익으로 의료비를 납부하도록 한것이다. 그 어떤 접점도 없어보이는 의료 문제와 예술계를 연결함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상기시키고 해결까지 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보며 결국 중요한 건 상황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지만, 그걸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결하는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스치프, 브라보다.
다음은 한정판, 보여주기식 소비 등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면면을 비판하는 섹션. 개인적으로 나도 이런 사회상에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 미스치프가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역시나 신선하다. 사진에는 없지만 에르메스 버킨백 여러개를 구입한 후, 재조립하여 버켄스탁을 만들어놓은 작품도 있었는데... 버킨 본인도 싫어한다는 버킨백이 대체 뭐라고. 동물 가죽 제품은 이제 제발 그만 소비하면 안될까.
마지막 섹션은 전시회의 부제이기도 한 'Nothing is Sacred' 관련 작품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그 어떤 것도 신성하지 않다는 일념하에 종교적인 이슈를 상업적인 브랜드와 접목시킨 운동화를 만들기도 하고(나이키에서 천사 운동화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악마 운동화는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미스치프는 이를 두고 나이키가 좇는 종교적 관점이 무엇이냐 반문했다고.) 소유하는 건 합법인데 마시는 순간 마약으로 판정되어 불법이 되는 음료를 전시해놓기도 했다.(미국 기준으로는 그렇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소유도 불법이라 대체재로 전시해두었다고 한다) 결국 미스치프는 우리가 당연스레 생각했던 사회적인 구조, 통념, 인식 등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뒤바꿔놓음으로써 '그게 정말 맞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건 누군가의 주입 혹은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들을 해일처럼 불러일으킨다. 일부 전시품에 대해서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저런 방식이 불필요한 생산물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긴 했으나, 미스치프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기존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시정하려는 노력 또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신선하고 재밌었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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