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고 느껴질 때. 내 앞에 마주한 현실을 뒤로 하고 어디든 혼자 있을 구석을 찾아 들어가서 천연 다른 세상에 정신을 빼앗기고 한참을 노닐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왠지 모를 만족감에 또 얼마간을 살아갈 위안을 얻는다. 어찌 보면 그건 몰입과 맥락을 같이하는 경험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쇼핑이나 영화에 엄청나게 집중하다가 거리로 내뱉어지면(?) 저 멀리 있던 현실감각이 돌아오곤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평소에 자주 가지 않는 공간에 가서 한 때를 보내는 것이 있는데, 장충체육관 주위를 한참 돌다가 딱히 식사할 곳이 없어서(!) 들어간 앰버서더 서울 풀만 1955 그로세리아가 나에겐 그런 장소였다. 호텔을 아주 안 다녀본 곳은 아니지만.. 뭐랄까 너무 익숙한 곳에서 너무 낯선 곳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이랄까.
참고로 이때는 리뉴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내가 주문했던 본식 메뉴는 더 이상 주문할 수 없는 듯하다. 베이컨으로 감자?를 감싸서 토마토소스와 함께 내놓은 메뉴였던 것 같은데... 인기가 별로 없었나. 여튼 내부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지만 각 공간마다 의자 디자인, 컬러와 테이블을 다채롭게 사용해서 한 공간임에도 섹션 구분이 확실한 편이다. 아예 소파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여유롭게 티를 즐기기 좋고, 바 체어에서는 치즈 플래터와 함께 와인 한잔을 하기가 좋고 네 명 테이블에서는 식사 메뉴를 즐기며 모임을 하기 좋도록 구성되어 있어 목적과 취향에 따라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인 듯하다. 최근에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굿즈를 내는 것이 보편화되어서 그런가 1955 그로세리아에서도 'g'로고를 삽입한 에코백 등의 굿즈도 판매하고 안주와 와인을 함께 포함해 선물용으로 제격인 와인 박스 등도 판매하던데, 고급스러운 선물을 찾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일 것 같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시간대가 약간 애매해서 매장 내 손님이 날 제외하고 1팀 밖에 없었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식사로는 현재도 온고잉 메뉴인 구운 문어 샐러드(28,000원)를 애피타이저로 주문했는데, 보드라운 문어와 바삭한 새우칩이 어우러져 재밌는 식감을 냈다. 대체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가면 문어를 전채 요리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던데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 서빙도 스무스하게 잘 되는 편이었지만 애피타이저 메뉴 이후에 본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게 흠이라면 흠. (한국인의 성미에 맞지 않는 속도...)
앰버서더 서울 풀만도 장충체육관을 거의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데, 역시 근처에 있는 신라호텔과 퀄리티를 비교하라면 당연히 신라호텔이 더 우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앰버서더 서울 풀만은 호텔 로비도 좀 작은 편이고 주변에 조경이 꾸며진 편은 아니라서 제대로 된 대접을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게 현실. 하지만 지인과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기엔 더없이 제격인 장소다. 좁은 로비를 지나 화려한 1955 그로세리아의 문을 지나면 화사한 내부와 안락한 느낌에 잠시 현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뒤로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레스토랑치곤 합리적인 가격도 한몫하고요. 식사 메뉴 외에 디저트 메뉴도 꽤 괜찮다고 하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위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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