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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를 엿보다_에드워드 호퍼전

예술과 배움

by zipzip 2023. 6. 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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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잊혔던 호퍼를 다시 떠올리다

에드워드 호퍼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지인과 함께한 미술 클래스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였다. 'Rooms by the sea'라는 작품을 선택하고, 따라 그리면서 독특한 구도와 문 너머 펼쳐진 바다를 상상하게끔 하는 그의 화법(스토리텔링 기법)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 잠시 그에 대한 기억이 잊혔다가 최근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예술가로서 그의 명성이 다시 높아지며 미디어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전에 뉴욕 Moma에 갔을 때도 그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사람이 없을만한 시간대로 바로 예약을 하고 다녀왔다.

 

내가 따라 그렸던 작품 Rooms by the sea

서울시립미술관이 되게 예쁘구나

호퍼의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8월 20일까지 열린다. 나는 이번 전시 덕분에 처음으로 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방문했는데,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단 덕수궁 돌담길 옆에 있는 게 참 좋았고, 정문을 바로 마주하는 게 아니라 입구부터 정문까지 돌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의 꽃과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미술관 정경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 주변 잔디밭에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는 등 여유를 즐기는 게 참 부럽고 좋아보였는데, 서울시립미술관도 그 못지않게 사람들이 잠깐 앉아 쉴 수 있도록 독특한 의자들도 배치해 놓고 산책길도 조성해 두어서 한층 편안한 분위기인 게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던 이날!
들어가는 입구엔 엄청 큰 꽃 장식물이..
오래된 고목 주위로 조성된 산책길엔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꽤 크지만 주위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나는 29cm에서 얼리버드로 예매를 하고 간터라 티켓부스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실물 티켓을 수령하고 입장했다. 오후 3시 예약이지만 조금 일찍 도착해서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들어갈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3시부터 3시 30분까지 입장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덕분에 주위 한 바퀴 돌면서 구경도 하고 물도 사 먹고 천천히 들어갈 수 있었다. 1층으로 입장을 하면 티켓을 확인하고 콘서트처럼 손목에 입장 팔찌를 걸어주시는데, 방문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층마다 입장 확인을 빠르게 하기 위해 그런 듯했다. 화요일 오후 3시에 입장하는데도 방문객이 꽤나 많은 걸 보니 주말에는 미어터질 듯.... 관리하는 인원들도 많아서 크게 문제는 없으려나.

 

2시간 동안 흠뻑 젖어들만큼 멋진 전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전시 이름

전시 순서는 2층 -> 3층 -> 1층 순으로 관람하면 된다. 동선 자체로 봤을 땐 다소 번거로운 면이 없진 않으나... 2층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한 후 관람을 시작하면 된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는 3천원이고 이번엔 유지태 배우가 녹음을 맡았다고 해서 좀 기대를 했다. 총 26개의 녹음본이 오디오 가이드에 담겨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미술 관련 어휘들을 이야기할 때 약간 부자연스럽게 말이 뚝뚝 끊기는 게 듣기 조금 이상했다. 이게 배우의 배경지식이 다소 미흡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술관측에서 요구한 부분인지 잘 모르겠다만.. 목소리는 듣기 편안하고 좋은데 내용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이 아니라서 아쉬웠음. 특히 셰익스피어의 소넷 한 구절을 읽어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원래 고전 시가는 이렇게 애매하게 끊어지게 읽는 건가요? 어쩌면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일 수도.

 

조세핀의 작품들도 걸려있다면 좋았을 걸
조세핀이 정리한 장부. 그림에 대한 정보와 거래 내용까지 다 적어두었다. 기록의 위대함이란.
선과 색채를 쓰는게 정말 깔끔하고 세련된 멋이 있다
5살에 예술적 재능을 보이고 10살에 본인 작품에 서명을 시작했다니...^^

아쉽게도 호퍼전은 1층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영상 촬영은 아예 불가하다. 아마 방문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에 대해 큰 실망을 느끼실 수 있겠으나... 나는 너무 좋았다. 왜냐하면 이제껏 대림미술관이나 여러 전시 가서 작품 구경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한 자리 차지하고 인증샷 찍겠다고 안 비키는 사람들에게 너무 혹독하게 데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강제로 사진 촬영 불가하게 만들어야 작품에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덕분인지 몰라도 2시간 동안 오디오 가이드도 듣고, 작품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먼발치에 떨어져 보기도 하고 그 어떤 전시보다 깊게 몰입해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전시 구성은 이제껏 호퍼가 프랑스, 뉴욕 등 거처를 옮겨가며 발전시켜 온 자신만의 화풍과 색채들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호퍼가 예술계에서 인정받기 전에 그렸던 판화, 스케치, 유화, 그리고 잡지 삽화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서 아내 조세핀과 호퍼의 관계 및 그들이 살아온 일생에 대한 자료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시는 끝맺음을 한다. 전시를 보면서 느낀 건 역시 기본기가 탄탄해야 그것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 'Rooms by the sea'를 감상했을 때 구도의 특장점을 제외하면 다소 단순한 그림이라 생각했기에 그림알못처럼 '이건 나도 그리겠다!' 했지만.. 큐비즘을 창시한 피카소도 굉장히 어린 나이에 이미 사실주의 화풍을 졸업해서 형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처럼 호퍼도 사실주의 그림 기가 막히게 그린다. 특히 이런 부분은 판화에서 극대화되는데, 무슨 펜화로 그려도 그것만큼 섬세하게는 못 그리겠다. 게다가 그 선이 엄청나게 깔끔하고 세련된 면이 있다. 일부 그림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그린 그림들도 있는데, 지금 그린 것이라고 해도 믿겠다. 또한 그의 그림은 어딘가 그 인물이 현재 처한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데, 스토리의 일부를 발췌해서 표현해야 하는 잡지 삽화를 다수 작업하다 보니 생기게 된 특질일까. 새로운 구도와 텅 빈 공간감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러니까 영화 거장들이 그의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가이드에서는 이를 '관객의 서사적인 발상을 자극한다'라고 표현하더라. 멋진 표현이다.

 

예술 작품은 꼭 실물로, 두 눈으로 담는 게 최고다

전시회에도 걸려있던 '공원의 밤'
전시회에도 걸려있던 '황혼의 집'. 이건 꼭 실물로 보세요.

구구절절 후기를 늘어놓았으나 전시회에 걸린 작품 중의 극히 일부만 담아냈을 뿐이고, 자고로 그림은 꼭 실물로 감상하는 걸 권장한다. 특히 위의 '황혼의 집'이나 '밤의 창문' 같은 작품들은 이렇게 그냥 모니터 속에서 그림으로 보는 것과 실제 작품으로 보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꼭 가서 보시길. 물론 호퍼의 유명한 작품인 '밤 새우는 사람들'이나 '철도 옆집'(나는 이걸 Moma에서 봤는데 이것도 실물이 짱이다...)이 걸리지 않은 건 큰 아쉬움이 남지만 그건 앞으로를 기약할 수 있겠지. 더운 여름날 시원한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 이것 또한 호사 아니겠는가.

 

전시 정보는요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exNo=1152724#scrap 

 

SeMA - 전시 상세

서울시립미술관은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미술관입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

sema.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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