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이 한국에 들어온 지도 어언 10년이 넘은 지금, 요즘 초중학생들은 마라탕으로 식사하고 탕후루를 디저트로 먹는 게 디폴트라면서요? 언제부터 중국 음식이 이렇게까지 일상에 침투해 온 건지 머리가 아파오지만 솔직히 한국에서 10년 넘게 유행이면 한국 음식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단 하나 용서할 수 없는 것. 요즘 시중에 파는 마라탕은 마라의 얼얼한 맛보다는 그냥 냅다 캡사이신을 들이부은 한국식 매운 찌개가 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지화시켰다고 해도 마라를 먹는 것 자체는 얼얼하고 혀를 감도는 싸한 느낌 때문인데 정체성이 너무 흐려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마라탕과 마라찌개 사이의 혼종을 넘나들다가 오랜만에 하이디라오에 방문했는데, 이게 찐 마라지. 캡사이신으로 둔해진 미뢰를 깨우는 얼얼한 마라를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이번에 방문해본 하이디라오는 명동지점. 서울에 꽤 여러 군데에 지점이 있지만 강남점은 너무 붐비는 느낌이고, 홍대는 가기가 불편해서 적당히 명동으로 자리를 잡아보았습니다. 다른 곳 대비 명동점은 매장의 규모가 별로 크지 않고 콤팩트한 느낌인데, 이에 대비되게 직원 분들은 엄청 많은 느낌이라 살짝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서빙되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 엄청 친절하시더라.
오늘의 주문
청유 마라 훠궈 (12,500원)
삼선탕 훠궈 (8,000원)
양 갈비살 (15,900원)
완자 모듬 (5,100원)
유부 (3,900원)
말린 두부 (4,500원)
두부피 (4,200원)
야채모듬 2인분 (인당 5,900원)
숙주 (1,900원)
팽이버섯 (2,500원)
소스바 이용 (인당 3,000원)
하이디라오는 모든 메뉴를 테이블에 비치된 태블릿 pc를 이용해 주문할 수 있다. 탕도 4가지 주문이 가능하지만, 늘 먹던 대로 가장 기본적인 마라탕과 백탕을 주문하고 각자 취향껏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샤브샤브든 훠궈든 야채를 많이 넣는 걸 좋아해서 모듬 야채와 숙주, 팽이버섯을 주문했는데 모듬 야채라고 해봤자 배추와 청경채, 비타민 밖에 안 나온답니다. 지인은 중국 현지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라의 찐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유부, 두부면, 말린 두부를 주문해서 얼추 균형이 맞았다. 소스는 대체로 소스바에 있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편이되, 땅콩 소스를 많이 넣어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용도로 먹는다. 하이디라오의 백탕은 딱히 설명할 게 없는 밍밍한 레토르트 사골국 맛이고 찐은 역시 마라탕이라고 할 수 있다. 마라탕에 들어가는 향신료가 끓는 탕 위로 둥둥 떠오르고 마라의 향이 코끝을 파고드는데, 한국식 마라탕으로 마라탕에 입문한 사람들은 쉽게 젓가락을 들기 힘든 맛이다. 마라탕을 가득 머금은 유부라도 한 입 머금으면 그때부터 얼얼한 맛이 혀의 앞뒤 양 옆을 가릴 것 없이 사정없이 때려대는데.. 다소 마조히스트 같은 성향이라고 보실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가 제대로 풀리는 맛이다. 먹을 때마다 느낌이 희한한 게, 혀를 엄청나게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감싼 느낌인데 차가운 대신 따뜻한 느낌?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가서 경험해 보시길 바라요.
갈까요, 말까요?
어설픈 마라 입문자라면 괜히 돈만 아까울 수도.
훠궈의 원조라고 불리는 음식점답게, 하이디라오는 가격대가 꽤 센 편이다. 나만해도 지인과 둘이 방문해서 7~8만 원 정도가 나왔으니 앞뒤 안 가리고 도전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게 현실. 만일 본인이 손오공마라탕, 탕화쿵푸 마라탕 등 (물론 지점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배달 마라탕으로 입문을 했다면 중국식 마라탕을 먹을 줄 아는 지인이랑 같이 가든가, 마라탕만 시키지 말고 토마토 탕이나 다른 대중적인 맛을 같이 골라서 즐겨보는 걸 추천한다. 괜히 한국식 마라탕 생각했다가 울면서 나올 수 있으니까요ㅠ
위치는요
*하이디라오 명동점 예약
https://app.catchtable.co.kr/ct/shop/haidilao_myungdong?pickup-date=230918&pickup-time=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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